주체적 여성인물과 변하지 않은 세계에 대하여
<포의교집>은 1860년대, 19세기 후반에 창작된 작자 미상의 한문 단편 소설이다. 기존의 고전소설과 달리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시간, 공간적 배경을 제시하는데, 이는 소설 속의 사건의 입체감을 강조하는 요소가 된다. 소설 속 남자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이생은 가난하고 나이도 많고 잘생기지도 않았으며 현명하지도 못한 그런 못난 인물로 나타난다. 한편, 이 소설의 가장 주요한 역할을 하는 여자 주인공 양파는 뛰어난 미모를 지니고 문학적 재능에 있어서도 탁월한 능력을 보이는 인물로 그려진다. 양파라는 여성 인물은 기존의 고전 소설에서 찾기 어려운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여성으로도 그려지는데, 이생과 양파 모두 혼인을 한 유부남, 유부녀의 신분으로 불륜을 벌인다는 것이 이야기의 큰 흐름이라고 할 수 있다.
1. 두드러지는 여성주인공의 주체성
여성 주인공 양파는 유부녀임에도 불구하고 이생과의 사랑에 있어서 거침없는 모습을 보여준다. 처음에 양파에게 반한 것은 이생이었지만, 이생은 양파가 좀처럼 마음을 열지 않는 차가운 여자라는 것을 알게 되자 쉽게 다가가지 못하고 머뭇거리
는 수동적인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양파는 이러한 이생과는 달리 먼저 봉선화를 던진 후에 꽃을 애석하게 여기는 이유를 아는지 묻거나 편지에 시를 써서 던지거나 적극적으로 이생의 거처에 찾아오기까지 하는 주체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 후에 이생과의 관계진전으로 서로 사랑을 나누는 과정에 있어서도 이생에게 적극적으로 사랑을 전하는 모습을 확인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매일 밤마다 이생과 만난다든가 과거를 준비하러 산사로 올라가는 이생을 위해 직접 음식을 해서 보내는 등의행위를 통해 명확하게 드러난다. 이러한 양파의 적극적인 행동은 남편에게 불륜을 적발당한 이 후에도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는 양상을 보인다. 불륜이 일반적으로 다소 떳떳치 못한 행위로 여겨짐에도 불구하고 양파는 자신의 이생을 향한 사랑에 거리낌 없는 태도를 지닌다. 그녀의 남편은 그녀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나아가 그녀를 죽이려고까지 하지만 이 후에도 그녀는 이생을 만나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 그녀가 이생에게 보내는 편지와 대화를 통해 그녀의 이러한 이생과의 사랑을 위한 주체적인 행동이 자신의 위치에 대한 깊은 통찰로 인해 이루어졌다는 것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즉, 그녀는 자신이 여성이라는 미천한 신분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가엾은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고 이러한 현실에 대한 비탄과 안타까움을 해소하기 위한 것들이 이생을 향한 사랑으로 표출되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이생과의 관계에서 진취적으로 관계를 이끌어가는 모습을 보이며 적극성을 보여주었고 이는 불륜이라는 상황에서도 적용된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생과 양파는 유부남과 유부녀이다. 따라서 그들의 사랑은 바람, 불륜이라고 할 수 있는데 여성인물인 양파는 이러한 자신의 불륜을 숨기려하지도, 부끄러워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녀는 자신의 사랑이 진실 된 사랑이자 올바른 행동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러한 그녀의 사랑 방식에 대한 확신은 작품의 끝까지 이어진다.
2. 여성 캐릭터의 변화에 부응하지 않는 기존의 세계관
한편, 양파라는 여성캐릭터가 기존의 고전소설과 확연한 차이를 보여주는 가운데 그녀를 둘러싼 세계관의 변화는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 이 작품의 또 다른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양파는 지속적으로 자신의, 사람들의 운명에 관해서 언급하고 이
와 같은 운명이 사람의 인생을 결정하는 것은 비통한 일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남녀관계에 있어서 남성과 여성이 동등한 관계에 있기를 바랐던 것 같다. 운명과 신분에 대한 언급에서 그녀는 태어날 때부터 신분이 정해지는 19세기의 세계관을 꼬집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남녀의 애정관계에서 또한 수동적이고 나약하게 그려져왔던 여성인물에 파격적인 변화를 불어넣는 것에는 이러한 운명론적 관점에 반기를 드는 작가의 한 목소리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결국 양파가 작품에서 처하게
되는 현실이 곧 실제 당대 조선의 현실과 같다고 볼 수 있다.
양파의 의식은 변화하였지만 그녀를 제외한 다른 인물들은 변화하지 못했고 오히려 양파의 사랑과 노력을 무시하고 망치려고 든다. 아무리 뛰어난 미모를 지니고, 훌륭한 문장실력을 지녔다고 해도 여자로 조선에서 살아간다는 것 자체만으로 양
파의 현실은 가혹하고도 냉혹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생 또한 그녀가 원하던 듬직하고 현명한 선비의 모습이 아니었다. 문장실력 또한 그녀보다 떨어져서 그녀가 원하던 문장으로 소통하는 것도 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얼굴도 못생겼으며 나이도 많았고 전반적으로 양파가 그에게 너무 과분했다. 하지만 양파는 그를 그녀가 보고 싶은 대로 보았고 그녀가 보기 원했던 그의 편파적인 모습만을 사랑했던것 같다. 그래서 결국 그녀의 열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사랑은 실패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3. 여성인물의 한계
작가가 여성인물에게는 변화를 주고 여성인물을 둘러싼 세계는 변화시키지 않은 이유는 결국 여성인물의 인식 및 의식 변화가 결코 이미 존재하는, 만연한 세계의 인식을 뒤엎을 수 없다는 비극적인 메시지를 제시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하는 생
각도 들었다. 아무리 발버둥치고 소리쳐보아도 결국 같은 세계에 살게 되는 사람들은 변하지 않고 따라서 세계도 변하지 않고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외적인 요소들에 의해 인물들의 비감이 극대화 되는 것이다. 하지만 결국 다시 그들의 사랑이 실패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여성인물인 양파의 탓으로 돌리고 있는 느낌은 지울 수 없었던 것 같다. 이생 또한 불륜이라는 잘못을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남성의 불륜은 잘못으로 보지 않는다는 점, 따라서 남녀 동등하게 잘못을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남성인 이생보다는 여성인 양파에게만 그 기준이 더 엄격하게 작용하는 모습은 어쩔 수 없는, 극복할 수 없는 19세기 조선의 현실로 보여서 안타까웠다.
<포의교집>은 두드러지는 여성인물을 내세우며 기존의 고전소설에서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던 여성의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면모를 부각시키며 이야기를 진행시켰다. 이러한 점에서 분명한 의의를 지니고 있으며 이로 인한 영향 또한 작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이 작품은 남녀의 관계와 위치에 있어서 늘 하위에 속할 수밖에 없었던 여성인물에게 동등한 위치를 꿈꾸게 할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큰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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